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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군생활회고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게 한 공수기본교육, 인생전환기

by 엘티파크 2023.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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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전학교, 공수기본교육
3주간 힘들면서도 보람차고 강렬했던 공수기본교육

1. 공수기본 교육

2020년 말, 203특공여단이 203신속대응여단으로 개편 준비를 함에 따라 간부들 위주로 공수교육을 보내기 시작했다. 공수교육은 간단하다. 그냥 낙하산 메고 비행기나 헬기에서 뛰어내리는 것이다.

공수, 고고도강하

 

말은 간단하지만 행동은 그렇지가 않다. 유튜브나 TV에서 봤을 때는 하나도 무서워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내 일이 된 순간 급격하게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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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낙하산 메고 안전하게 지상에 착지하기 위해서는 낙하산이 펴진 이후에 조작 방법과 착지 요령에 대해서도 무수히 많이 반복 숙달해야 한다. 

공수기본, 착지 준비
벌 받고 있는 게 아니다. 착지 연습하는 중이다

착지 요령같은 경우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착지 잘못하면 발목이 골절되는 경우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착지에 대해서는 정말 잘 알고 있어야 한다. 

 

2. 특수전학교에 또 입교하다

갑자기 부대에서 공수 교육 가라고 하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것도 1주일 전에 알려준 것인데, 마음이 착잡했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서운데 뛰어내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그래도 '무섭다고' 교육 안 가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이게 무서워서 못 가면 소대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반응이 뻔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특수전학교에서 특공수색 교육을 받은 지 6개월만에 다시 특수전학교에 입교했다. 

2023.08.08 - [분류 전체보기] - 황금베레 장교의 군생활회고 #16 특수전학교에서 특공수색 교육을 받다!

 

황금베레 장교의 군생활회고 #16 특수전학교에서 특공수색 교육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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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UDT 대원들과 교육을 받다!

원래 특수전학교에서 받는 공수기본교육에는 다양한 분들이 온다. 꼭 육군에 한정되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군인이 아님에도 공수교육을 특수전학교에서 받기도 한다. 이들은 국정원 요원들이다. 

상상 속 국정원 요원현실 국정원 요원
상상 속의 국정원 요원 / 현실 국정원 요원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인지, 국정원 요원들은 그냥 회사원 느낌이었다.(그래 오히려 눈에 안 튀는 게 낫겠지)

 

해군, 공군에서도 교육을 받으러 온다. 이들은 UDT, CCT와 같은 이름만 들으면 바로 아는 그 특수부대들이다. 이들과 함께 교육을 받아서 영광이었다. 

 

4. 여기서는 계급 따윈 없다

이전에 특공수색 교육을 받을 때는 교관분들(부사관)이 장교라고 함부로 대하지 못한 감이 있기는 했는데, 공수기본교육은 그런 것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공수기본교육 입소식을 하고 난 이후에는 철저히 교관/교육생 신분으로 나뉜다. 계급이 제일 높은 교육생이 1번 교육생이 되고, 교육생 대표로 활동한다. 

 

본인이 교육 받을 때는 소령분이 1번 교육생이었다. 입소식 끝나고 첫 교육 받을 때 제일 먼저 얼차려를 받으시는 분이다. 

 

교관(상사)이 단상에 서고 1번 교육생(소령)이 단상 아래에서 교관에게 경례를 붙이는데, 이때 교육생이 하급자에게 경례하는 것에 익숙치 않아서 목소리를 낮게 하면 '큰 소리를 지르며 저기 찍고 와'를 교관이 시전하게 된다. 

 

이는 교육생이 중령이어도 예외가 없다. 저번 기수에는 중령분이 1번 교육생이었는데, 제일 먼저한 것이 엎드려뻗쳐였다고 한다..

 

나보다 한참 위에 있는 분(당시에 난 아직도 소위였다)께서도 교관의 말을 잘 따르는데, 그 어느 누구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교육 간에는 교관이 '짱'이다. 

 

5.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1주차

1주차는 그냥 얼차려 받는 주라고 생각하면 된다. 유격에 유격 체조가 있는 것처럼, 공수에도 공수 체조가 있다. 유격도 다녀와봤지만 공수 체조가 그냥 최고로 힘들다. 

이게 개인적으로 미치도록 힘들었다

8번 PT였나, 정말 무자비했다. 힘들다고 다리를 조금 굽히면 바로 열외되어서 교관님들이 '야 저기 찍고 와'를 시전하신다. 

 

그 외에도, 교육생들의 목소리가 낮으면 단체로 팔굽혀펴기 기합을 받는데, 이때 '하나에 목소리를, 둘에 크게 하자'를 시키셨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이다. 

 

그러나 갑자기 '하나'를 외치시고 '둘'을 안 외치시는 것이다. 1분인가, 지났던 것 같다. 이제 '둘'을 말씀하실 때가 됐는데 갑자기 말씀하시는 것은 기상천외한 것이었다. 

 

바로 팔을 굽힌 상태에서 군가를 시키신 것이다.(검은 베레모) 그렇게 우리는 너무 힘든 나머지, 목에 쉰내가 나면서 군가를 불렀다. 

 

그 외에도 힘든 일이 참 많았다. 1주차 끝났으면 사실상 절반은 끝낸 것이다. 

 

6. 실제 공수교육에 접어든 2주차

2주차부터 본격적으로 공수교육을 실시한다. 모형탑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모형탑 관련해서,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생각되는 교육생들을 따로 조사해서 1주차에 모형탑을 누구보다 먼저 타게 한다. 

 

바로 그 '인간이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는 11m의 모형탑 훈련 제가 직접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다. 그냥 올라 섰을 때는 별 감흥이 없다가 실제로 뛰어내린다고 생각하니 심호흡을 가다듬게 됐다. 

 

너무나도 무서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해야 할 거, 뛰어내리기로 했다. 뛰어내리자 마자, 들었던 생각은 '아 큰일 났다'였다. 그러면서 정신을 놓게 됐다. 소리를 계속 지르며 내려온 것이다.

 

그래도 한번 뛰어 내리니,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자신감을 가지고 2주차 교육을 받았다. 

 

놀랍게도, 보충 수업을 받아서인지, 2주차 때는 자신감을 가지고 과감하게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교관님이 하셨던 말이 '45번 교육생, 어디 가서 고소공포증 있다고 하지 마'였다. 

 

고소공포증도 극복해주는 곳. 특수전학교다. 

 

7. 실제 강하를 하게 되다

1, 2주차 때 무수히 받은 착지 훈련, 공중동작, 등을 다 연마하고 나서 실제 강하할 때가 왔다. 

 

2주차 마지막 날에 교관님이 실제로 기구에서(300m) 뛰어내리는 시범을 보여주셨다. 이때 참 충격적이었다. 낙하산이 펴질 때까지 그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한 4-5초 쯤 걸렸던 것 같다. 그 짧은 순간에 벌써 한 5-60m는 자유 낙하한 것 같았다. 그러면서 '와 망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번째 강하 

3주차 시작을 하면서 이제 내가 그 위치에 설 차례가 됐다. 낙하산을 메고 기구에 올라섰다. 기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계속 올라갔다. 곧이어 저 멀리서 롯데월드타워가 보이기 시작했다.. 

특수전학교는 경기도에 위치해 있어서 높은 산에 올라가면 롯데월드 타워가 보인다

이제 뛰어내릴 시간이 되었다. 4번 강하자인 나는 앞에 있는 강하자들이 뛰어내릴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1번 강하자가 주춤할 거라 생각했지만, '노빠꾸'로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2번도, 3번도 그렇게 '노빠꾸'로 뛰어내리니, 이제 내 차례가 된 것이다. 

아니.. 천천히 좀 뛰어 내려주지 동기들아!

나만 주춤할 수는 없어서 아무 생각 없이 바로 뛰어 내렸다. 뛰어 내리면서 외쳐야 하는 구령이 있다. 바로 1만, 2만, 3만, 4만이다. 이는 낙하산이 4초안에 펴져야 한다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구령이었다.(안 펴지면 예비 낙하산을 펴야 한다. 수동으로)

 

1만, 2만까지는 외쳤다가 그 다음에는 도저히 외칠 수가 없었다. 배 안의 장기가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낙하산이 펴지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이러면 안 되고 3만, 4만도 외쳐야 한다. 그래야 낙하산이 안 펴질 때 예비 낙하산을 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낙하산이 안 펴졌으면 난 죽었다. 

 

일단 낙하산이 펴지고 나니, 그 고요함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천천히 내려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지상 쪽을 보니, 생각보다 빠르게 떨어지고 있던 것이었다. 

 

배운대로 착지 준비를 하고 올바른 동작으로 착지를 하니 다친 곳 하나 없었다. 

 

두번째 강하, 그리고 세번째 강하 

두번째 강하도 기구였다. 첫번째 강하 때는 어떤 느낌인지 몰라서 두려웠다면, 두번째 강하할 때는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알기 때문에 더 두려웠다. 

 

동일하게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렸다. 앞에 어느것이 덮칠지 모르고 하는 것과 알고 하는 것의 차이는 예상 외로 컸다. 두번째 강하가 훨씬 무서웠다. 

 

세번째 강하 때는 '이제 제발 그만'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번째 강하자가 되었고, 제일 먼저 뛰어내려야 했기 때문에 공포감이 극에 달했다.

 

결국 두번째, 세번째 모두 1만, 으아아악, 하다가 낙하산이 펴졌다. 

 

시누크 헬기에서 뛰어내린 네번째 강하 

시누크 헬기라고 불리는 CH-47 헬기

네번째 강하는 그냥 별 생각이 없었다. 소대원 중 한 명이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얼른 부대로 복귀하고 싶어졌다. 

2023.08.11 - [군생활회고] - 황금베레 장교의 군생활회고 #19 소위 시절 부사관과의 갈등

 

황금베레 장교의 군생활회고 #19 소위 시절 부사관과의 갈등

1. 장교와 부사관과의 관계 계급상으로는 장교가 부사관보다 위다. 그렇기 때문에 군생활 30년 이상 한 원사분도 갓 전입 온 소위를 보면 경례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교가 부사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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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행인 것은 기구가 아니라 시누크 헬기였다는 것이다. 기구는 가만히 있지만, 시누크 헬기는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때문에 낙하산이 펴지는 속도가 월등히 빠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헬기를 타니까 실제 강하하는 느낌이 들었다. 강하조장이 존재하고, '패스 일어섯'이라는 구령, 그리고 기구에서 하지 않는 각종 행동들을 하니까 정말 공수훈련을 하는 것 같았다. 

 

헬기에서 뛰어내리니 한 3초 안에 낙하산이 펴졌던 것 같다. 편안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다치지 않고 착지까지 잘 마무리 했다. 

 

8. 공수 교육을 받으며 느낀 점

공수를 받기 전과 후로 인생이 나뉜다고 할 수 있을만큼 강렬한 경험이었다. 절대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해 보니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고소공포증'이라는 것은 내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진 않은지, 그렇다면 무엇을 함에 있어서 제한사항이라고 느껴졌던 것  즉, '난 이래서 못해'라는 것은 실제로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토퍼 로그라는 영국 시인이 쓴 시가 한 편 있다. 

 

 

절벽으로 오라. 그가 말했다.
그들이 말했다. 할 수 없습니다. 무섭습니다.
절벽으로 오라. 그가 말했다. 
그들이 말했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떨어질 거에요!
절벽으로 오라. 그가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갔다.
그리고 그가 그들을 밀었다. 
그리고 그들은 날았다. 

떨어질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뛰어내리는 용기(마음)가 있는 자. 이런 용기가 있어야만 무엇이든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 먹기에 따라 모든 것을 이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되면 되게하라. 마음 먹기에 따라 안 되는 것일 수도 있고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이 공수기본 훈련을 통해서 무조건 된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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