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

다운폴, 제3 제국의 마지막 14일

반응형

나치 독일의 마지막 순간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

 

2004년에 올리버 히르슈비겔 감독이 내놓은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합작 영화입니다. 원어는 'Der Untergang'입니다. 이는 몰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제목에서부터 나치 독일의 몰락을 다루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당시 히틀러의 벙커 안에서 히틀러와 같이 있었던 사람들의 회고를 바탕으로 제작이 되었습니다. 영화는 히틀러의 여비서 트라우들 융에의 시선에서 히틀러는 어떤 사람이었고, 그의 곁엔 어떤 사람들이 있었으며 벙커는 어떤 곳이었는지를 섬세한 묘사를 통해 보여줍니다. 또한 히틀러 유겐트 소속인 12살 페터의 시선을 통해 벙커 외부에 있는 일반 시민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벙커 안에서  자신만의 전쟁을 끝까지 이어 나가는 히틀러

 

때는 1945년으로, 전황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독일에 너무나도 불리했습니다. 미군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 연합군은 이미 독일 본토에서 전투를 지속해나가고 있었고, 심지어 소련은 1945년 4월 16일이 되어서는 베를린을 포위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봤을 때 이미 전쟁은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히틀러는 전쟁을 지속해나갑니다. 뿐만 아니라, 베를린이 포위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베를린을 떠나지도 않습니다. 하인리히 힘러나 헤르만 페겔라인은 히틀러에게 전쟁을 계속해나가더라도 베를린을 떠날 것을 권유했지만 그런데도 그는 베를린에 남겠다고 합니다. 그가 베를린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습니다. 

 

1. 히틀러는 패배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만큼 고집이 셌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는 최악의 상황에 부닥쳤음에도 불구하고 단 며칠 안에 전쟁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2. 당시 히틀러는 파킨슨병에 걸리면서 약물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어려웠을 수 있었습니다. 

3. 전쟁 중 물러서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징적인 죽음을 맞이하면 독일 내 모든 나치 세력들의 사기를 북돋아 줄 것이라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4. 당시 베를린이 연합군에 의해 봉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연합군은 베를린으로 가는 모든 보급선을 끊었기 때문에 베를린을 떠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도 들었을 수 있습니다. 

 

위에 열거한 어떠한 이유 때문이든, 히틀러는 베를린을 떠나지 않고 전쟁의 판도를 뒤집을 방안을 생각해냅니다. 이를 위해 히틀러는 슈타이너의 무장 친위대를 동원하여 소련군을 내쫓을 계획을 수립합니다. 하지만 당시 슈타이너의 친위대 부대는 막강한 기세로 전진하는 소련군을 막아낼 병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히틀러의 명령을 거부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히틀러는 격분함과 동시에 희망을 잃어갑니다. 그러나 희망을 잃었다고 그는 전쟁을 끝내지 않습니다. 진정한 아리아인은 모두 들고일어나서 조국을 지켜내야 한다는, 매우 비합리적인 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히틀러는 어린 소년들도 전선에 투입할 뿐만 아니라, 전혀 싸울 힘도 없는 노약자도 전선에 투입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시민들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무의미하게 죽어 나갑니다.

이렇게 비합리적인 명령을 내리는 히틀러로 인해 많은 시민이 무의미하게 계속 죽어 나가자, SS 친위대 수장인 하인리히 힘러와 제3 제국의 이인자였던 헤르만 괴링은 히틀러를 배신합니다. 히틀러 대신 연합국에 항복함으로써 패배가 명확한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히틀러는 그들을 배신자들로 규정하고 모든 직위에서 해제시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벙커를 향한 포격은 빈도가 더 높아지고, 소련군은 베를린을 계속해서 점령해 나갑니다. 히틀러도 자신에게 살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음을 직감했는지, 시간이 가면 갈수록 히틀러의 얼굴은 창백해집니다. 벙커가 소련군에 의해 점령되기 며칠 전 히틀러는 자기 애인이었던 에바 브라운과 결혼을 하고 몇 시간 뒤 그녀와 함께 자살합니다. 죽기 전 그는 자기 부하에게 흔적도 안 남게 시신을 태워달라고 명령합니다. 소련군에 의해 시신이 훼손되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히틀러는 그가 원했던 대로 화장되고, 그의 권력은 요제프 괴벨스가 물려받게 됩니다. 

 

 

제3 제국의 몰락과 종전

 

요제프 괴벨스도 히틀러의 입장과 동일했습니다. 절대 항복은 있을 수 없다며 반대하지만 국민들이 계속 죽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명령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무조건적인 항복을 합니다. 그 상황을 지켜보기 싫었고 자기 자식들이 나치가 없는 세상에서 살길 원치 않았던 괴벨스는 벙커에 온 자기 자식들 6명을 독살합니다. 그리고 그와 그 아내 또한 자살하면서 생을 마감합니다.

빌헬름 몬케를 비롯하여 벙커에 있던 대규모 병력은 항복하기 전날에 벙커를 빠져나와 최후의 항전을 대비하지만 결국 이들도 항복을 받으러 온 소련군을 보자마자 총을 내려놓고 항복합니다. 히틀러의 여비서 트라우들 융에도 빌헬름 몬케와 함께 벙커를 빠져나왔지만 그녀는 여자였고 군인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포로로 수감이 되지 않습니다. 그녀는 히틀러 유겐트에서 빠져나온 페터를 만나 자전거를 타면서 어디론가 향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였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정도로 매우 사실적이어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