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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군생활회고

학군단 3학년 사관후보생 생활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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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복 입는 것이 자랑스러웠던 그 때.

기초군사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입단식을 거쳐 드디어 정식 사관후보생이 되었다. 처음 단복을 수령하고 단복을 입게 되니 제법 사관후보생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 같았다. 단복을 깔끔하게 입었는데 머리가 정돈되지 않았으면 인지 부조화가 올 것 같았기에 단복을 입으면 항상 머리부터 발끝까지 깔끔하게 하고 다녔다.

 

바로 이때부터 습관이 생겨 지금도 어디 외출을 나가곤 하면 가르마를 타며 머리를 정돈하고 나가게 되었다. 학군단 생활을 하면서 실행하게 된 좋은 것 중 하나인 것이다. 요즘은 정장을 입어도 머리 정돈을 안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아마도 이러한 습관을 들이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학군단 후보생이라는 개인적인 자부심을 갖고 머리 하나부터 정돈하는 습관을 들으니 그에 맞게 지금까지도 옷도 항상 깔끔하게 입게 되었다. 

 

단복을 입으면 확실히 기분이 좋다. 왜냐하면 내 개인적인 생각일지는 몰라도, 일반 사복을 입었을 때보다 더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점도 존재한다. 학교마다 선후배간 분위기가 다를 수 있지만, 당시 우리 충남대 학군단은 선후배 관계가 뚜렷했다. 그래서 단복을 입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몇몇 있었는데, 하나는 여자친구가 있다면 단복 입은 상태에서 손을 잡으며 걸어 다닐 수 없다는 것이었고, 단복을 입은 상태에서 무엇을 먹으며 돌아다닐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자를 벗고 다니는 탈모 보행이라든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는 입수보행을 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나는 다 지키려고 하였다. 심지어, 전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단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때 개인적으로 감정이 격앙되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단복을 입으며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는 것은 명시된 바 없으나, 사관후보생에 대한 이미지 실추를 가져올까봐 절대 그러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선배님들이 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들은 전부 장교가 될 우리 후보생들이 장교로서의 기본적인 면모는 갖춰야 한다는 의미에서 강조하셨던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기꺼이 그러한 것들을 지켰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동기들한테는 이를 강조하면서 단복에 개인 코트를 입고 다니시거나 입수보행을 하셨던 선배님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한 면을 보면서 '나는 절대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라는 마음가짐을 새겨넣었다. 

 

군수과장 섹션
3학년 1학기 때 군수과장 후보생이었던 나.

지금까지 대학 생활은 너무 나 혼자서, 나를 위해서만 해왔다면 3학년때부터의 생활은 달랐다. 학업에 충실하는 것도 그렇지만 학군단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싶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해서 돈을 따로 더 받는 것은 아니다. 똑같다. 한 달에 6만 8천원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을 함으로써 내가 한 조직에서 가치 있는 일원이 되고자 했다. 

 

그렇게 나는 군수과장 후보생이 되기로 했다. 대대장 후보생은 경쟁이 치열했기에 나는 그보다 덜한 군수과장을 택한 것이다. 집체교육 전부터 학군단에서 아침 뜀걸음하는 것에 참석도 하고 학군달 활동도 열심히 했었기 때문에 훈육관님께서는 나를 군수과장 후보생으로 찍어서 학군단장님께 보고를 올리셨다. 그렇게 나는 3학년 1학기의 군수과장이 되었다. 

 

이것도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학교에서 군수과장이 하는 일은 단복에 학군단 패치를 '오바로크' 할 때 동기들 옷을 다 걷어서 군장점에 맡기게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군장점과 연락을 하고 동기들한테 몇날 몇시까지 어디에 옷을 두라고 전파도 열심히 했었다. 그러나 협조를 잘 안 해주는 동기들로 인해 일이 조금 어려웠던 것 같다. 

 

또한, 하계 군사 훈련 가기 전에 공동구매를 할 필요가 있는 물건들, 이를테면 정글모, 호각, 후레시 등등을 조사하여 엑셀로 정리한 후 군장점에 연락하여 구매를 하는 것이었다. 학군단 패치를 오바로크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것도 개인별 금액을 청구해야 하기 때문에 누가 돈을 냈고 누가 안 냈는지 꼼꼼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학군단 지휘근무자의 일원이다보니 학군단 업무와 관련해서 대대장 후보생과 같은 지휘근무자 동기 및 선배들과 여러 토의도 했던 것 같다. 

 

이렇게 학업도 하랴, 학군단에도 신경을 쓰랴, 바빴었지만 많은 보람을 느꼈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이런 와중에도 평점이 4.38점이 나왔었는데, 나조차도 신기했다. 물론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었지만. 

 

학군단 생활을 하면서 많은 동기들과 친해지다보니 동아리 활동도 시작하게 되었다. 교환학생들과 교류를 하는 동아리였는데, 뉴질랜드에서온 교환학생을 한 학기동안 돕기로 하면서 같이 들어가게 되었다. 사실상 놀면서 친해지고 친해지면서 서로 영어로 대화를 하는 식이었는데, 이게 너무나도 재밌어서 졸업 때까지 동아리 활동도 하게 됐다. 

 

1, 2학년 때 회색 빛깔만 띄었던 내 대학생활이 학군단을 통해 많이 변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학군단을 안 했다면 내 인생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외부와 고립된 채 살아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4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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