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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군생활회고

ROTC 기초군사훈련 지도 후보생의 경험. 그리고 느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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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훈지도후보생의 상징, 빨간 모자
기훈지도후보생의 상징, 빨간모자, 그리고 녹견 위에 부착하는 철제 학년장

1. 기초군사훈련 지도 후보생이란(줄여서 '기훈지도 후보생')

기훈지도 후보생은 학군단에 입단하기 전에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예비'사관후보생들을 기초군사훈련 간 지도하는 사관후보생이다. 병 기준으로 본다면 훈련소 조교같은 느낌일 것이다. 

폼 잡고 사진 찍는 6교육대대 58기 기훈지도 후보생들.

본인이 기훈지도 후보생일 때는 임관을 앞둔 4학년 사관후보생이 지도를 했으나, 현재는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는 일은 동일할 것이라 생각된다. 

 

기훈지도 후보생은 학군단에서 4학년 사관후보생들에게 강제로 지원 나가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100% 지원해서 하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임관 전 마지막 휴식을 학군교에 반납해야 한다. 

 

본인은 이 경험이 차후 소대장으로서의 역량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하여 기꺼이 휴식 대신 빨간 모자 쓰는 것을 택했다. 

 

2. 기훈지도 후보생 집체교육

아무래도 기초군사훈련이 처음 군사훈련을 받는 예비 사관후보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니만큼, FM 그 자체를 보여줘야 한다. 학군교는 장교를 양성하는 기관이고, 처음부터 훈련을 만만하게 하면 나중에 가서도 군기라는 것이 아예 없어져서 당나라 장교를 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요즘 보면 당나라 장교 양성하는 것도 같다..)

 

그래서 학군교 입장에서도 정말 제대로 지도를 할 수 있는 사관후보생이 기훈지도 후보생이 되길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집체교육 때 정말 이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후보생만 남길 원하는 차원에서 집체교육도 비교적 '빡세게'했다. 

집체교육 후에 드디어 빨간 모자를 받았을 때

물론 아쉽게도, 학군교에서 정말 제대로 할 수 있는 4학년 사관후보생만 남길 위했겠지만 그와 동시에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총기 분해조립도 못하는 인원 2-300명을 훈육관님들 4-5분이 다 커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때문에 다소 행실이 부적합한 인원도 결국엔 빨간 모자를 주었다. 

 

3. 기훈지도 후보생 임무수행

훈련 1주차 간 기훈지도후보생의 일상적인 모습. 버럭버럭 소리를 지른다

기훈지도 후보생은 본인 학교 후배들을 맡아서 교육한다. 본인은 충남대 학군단 출신이기에 충남대 후배들을 지도했다. 

 

기본은 계속 반복하면 일상화된다

일단 예비 사관후보생들이 학군교로 오자마자 기훈지도 후보생들의 표정이 험악해진다. 정신 차리고 빨리 빨리 움직이라는 의미에서 소리도 많이 지른다. 항상 복명복창을 강조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렇게 하다보면 예비 사관후보생들의 목이 쉬게 마련이다.(물론 본인 목도 무사하진 않다)

식당 이동을 포함해서 각종 이동 간에 지휘를 한다

또한, 예비 사관후보생들이 발 맞추며 행진하는 것이 일상이 되게끔 항상 지휘 간에 발이 맞는지 확인하고, 안 맞으면 최초에 소리를 질러서 신속하게 발 맞출 것을 강요한다(발 맞춰!!). 그러다 정 안 되면 될 때까지 바로 옆에서 방법을 전수해준다.(이런 경우는 정말 모르는 경우이므로 침착하게 잘 알려준다)

군가는 무의식 중에 흥얼거리게끔 계속 반복한다

또한, 이동 간에는 군가를 반복 제창하여 육군 10대 군가를 무조건 외울 수 있게 한다. 물론 처음에 알 리가 없다. 그래서 지휘 간에 군가를 구절마다 끊어서 직접 부르고 그걸 따라 부르게 하는 방식으로 군가를 교육했다. 

 

소리지르는 것이 기본설정이지만 꼭 이 방식만 고수해선 안 된다

본인이 기초군사훈련 받을 때 부끄럽지만 제식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래서 항상 혼자 제식을 틀려서 자존감이 낮아지는 때가 있었던 지라, 잘 안다. 그냥 안 하는 경우와 정말 몰라서 못하는 경우를 구분하여 교육해야 한다는 것을.

기초군사훈련 때 어려워했던 제식.

제식이라 함은 발 맞춰서 가는 것이 기본이지만, 앞으로 가다가 갑자기 좌/우측으로 꺾는 동작도 배운다. 이게 사실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 어려운데, 본인은 기초군사훈련 때 이게 너무나도 어려웠다. 다른 동기들은 다들 감을 잡았는데, 나만 못 잡은 것이다.(몸치여서)

 

그러나 나중에 시간이 흘러 그 동작에 대해서 잘 이해하게 되었고, 몸치라고 하면 세계 최강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기에, 내가 할 수 있다면 그 누구든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제식 교육 간 잘 따라오지 못하는 후보생이 생기면 옆으로 가서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동작을 천천히 함으로써 따라할 수 있게 하고, 따라하게 함으로써 그 동작을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교육 방법은 누가 가르치든 그게 그것이겠지만, 본인은 못한다고 해서 화내지 않고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도와주는 방식을 썼다.

 

그리고 이는 효과적이었다. 나중에 보니 그 동작을 못하는 예비 사관후보생들이 없었던 것이다! 이를 지켜본 소령 교관님이 쉬는 시간 때 '잘했다'고 격려해주셨는데, 이게 참 크나큰 힘이 됐다. 

 

2주차가 되며 슬슬 친해지다, 그리고 임무 종료

원래 1주차 때는 정말 강하게 잡지만, 우리가 떠날 시점인 2주차가 되어서는 예비 사관후보생들과 친해지게 된다. 기본적인 것은 지키되, 나중에 가서는 학군단 훈련 '썰' 같은 것을 풀기도 하고, 웃음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더 있고 싶어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2주만 되면 가야 하는지라, 기초군사훈련을 3주 정도 받는 예비 사관후보생들보다 더 빨리 나가는 것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예비 사관후보생들이 처음으로 완전군장을 메고 교장 이동하는 때였다. 완전군장을 할 때는 끈을 잘 조이는 것이 중요한데, 그렇지 못하면 가방이 계속 위 아래로 움직여서 이동 간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은 했지만 이를 한번에 못 알아듣는 인원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마지막 임무 종료까지 끈을 체크했었는데, 시간이 부족하여 다 확인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다 확인할 여유가 있었더라면 다들 조금이나마 편하게 갈 수 있었을텐데..

 

이러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임무를 마치고 학군단으로 돌아왔다.

 

4. 기훈지도 후보생 임무 수행하면서 느낀점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때는 기훈지도 후보생이 편안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예비 사관후보생들보다 30분 일찍 기상해야 했고, 계속 생활관을 돌아다니며 예비 사관후보생들이 잘 하고 있는지 체크해야했으며, 매번 식당 이동 인솔을 해야 했다. 그리고 교육 간에도 계속 지도를 해야 했다보니, 쉬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물론 쉴 걸 기대하고 온 건 아니었지만.

기초군사훈련이 1-2월 제일 추울 때 하는 것인만큼, 야외에서 오랫동안 있다보면 얼굴에 감각이 사라진다

그래도 지도를 하면서 배운 것이 참 많다. 대표적으로 '솔선수범'이다. 만약 교육 간에 예를 적절히 보이지 않고 그냥 하라고 했다면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실제로 모범을 보이며 교육을 하니 잘 따라오고, 배우려는 의지가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를 통해 소대장이 되어서 소대원들 앞에서 체력이 되었든, 제식이 되었든 모범을 보여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그래서 소위때는 정말 FM 그 자체였던 것 같다. 

학군교 본청 앞에서

그리고 또한 잘 모를 경우에는 정말 잘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물론 이는 정말 모를 경우이고, 아는데도 안 하면 그럴 때는 강하게 나갔다. 이는 장교로 임관해서도 마찬가지로, 늦는 부하들에 대해서는 태도의 문제이므로 단호히 화를 냈지만, 독도법이나 화력요청과 같이 한 번 듣고 이해 못할 것은 절대 화를 내지 않고 어느 부분에서 이해가 안 되는지 파악한 뒤, 조금 더 자세히 나가는 식으로 교육을 했다. 

 

소대장하기 전에 예비 소대장 체험을 하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그리고 놀라운 건, 여기서 만난 예비사관후보생이 후에 내 후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좌: 전역하기 직전의 1소대장 우: 갓 전입온 소위 후임 1소대장

이를 통해 군대가 참 좁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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